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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국 강단도 내 꿈 이루기엔 좁은무대

교수 마다하고 국내 벤처기업 연구원 택한 유영국 박사

* 고교 2년 때 미국행 ... 수석졸업
* 시카고대 물리학부서 '올A'
* UC버클리대 박사과정 중에 '네이처'에 연구논문 2회 게재


소수민족으로는 최초로 미콜로라도 볼더고등학교 수석 졸업, 시카고대 물리학부 '내셔널 메리트 스칼러십(전액장학금)' 수혜, 학부과정 전 과목 'A'로졸업, UC버클리대 박사과정 중 네이처지에 연구논문2회 게재….

항상 ‘최초‘와 ’최고‘라는 수식어를 달고 다닌 물리학 박사 유영국(34)씨. 그러나 그가 지금 있는 곳은 미국 유수의 대학 강단도, 최고 시설을 갖춘 대기업 연구소도 아니다. 지난해 말 귀국한 그가 1월부터 출근한 곳은 경기도 성남 한 공단의 원자현미경 개발 벤처기업이다. 

졸업과 함께 코넬대·아이오와주립대 등 10여곳에서 교수로 오라는 제안이 쇄도했다. ‘박사 후 연구과정’을 생략한 파격적 조건이었다. 귀국을 앞두고서는 한국과학기술원(KAIST)·포항공대 등도 손짓을 했다. 국내 대기업 연구소에서는 억대연봉을 제시했다. 그러나 그는 이모두를 마다했다. “내 꿈을 이루기엔 너무 좁은 무대”라는 이유에서였다.

서울대원외고 2학년에 재학중이던 1990년 가족들과 미국행 비행기에 올랐다. 한국에서 전국 수석을 다투던 유씨에게도 ‘인종차별의 벽’은 높았다. 백인이 대부분이던 학교에서 소수민족은 식사도, 수업도 따로였다. 그 역시 서투른 영어 탓에 난생 처음 열등반에 배치되기도했다.

그러나 기회는 곧 찾아왔다. 수학시간에 교사가 시험삼아 낸 고난도 문제를 단숨에 풀었던 것. 우등반 수학교사까지 건너와 제일 어렵다는 문제를 냈지만 한국의 유명한 수학참고서를 30번이상 독파한 유씨는 모든 문제를 간단히 풀어버렸다.

그 즉시 우등반으로 편입했고 다음 학기에는 더 배울 것이 없어 인근주립대에서 수학강의를 들었다. 주(州)에서 시행하는 수학 올림피아드 대회서 입상하며 금세 교내 ‘화제의인물’로 떠올랐다. 피나는 노력으로 이듬해 대부분의 수업을 따라잡았고 결국 최우수학생으로 선정,졸업 대표 연설까지 맡게 됐다. 소수민족 학생 최초로, 그것도 1년 3개월만에 이뤄낸 쾌거였다.

그러나 그만큼 학생들의 질투도 있었다. 사물함에 계란이 깨져 있기도 했고 학생회장 학부모는 “학교측에 부정이 있다”며 소송까지 걸었다. 졸업식 날 “나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여기 소수민족 학생들의 가능성을 위해 이 자리에 섰다”며 연설을 시작한 그는 “언젠가 분명 이 자리에 다시 돌아와 그때 나를 이 자리에 세운 당신들의 선택이 옳은 것이었음을 증명하겠다”고 청중에게 약속했다. 유씨는 전교생·학부모에게서 기립박수를 받았고 졸업식 후 학생회장 학부모가 찾아와 사과했다. 소송도 다음날 취하했다.

그날 이후 졸업식의 기억은 유씨의 인생을 지배했다. 생활비를 위해 도서관 사서·유아 돌보기 등 닥치는 대로 아르바이트를 할 때도, 아이비리그 교수직을 마다할 때도 그 연설을 떠올렸다. “다시 돌아갈 그날을 위해 아직은 안주할 때가 아니다”라는 다짐을 되새겼다.

박사과정에서 아무도 손대지 않던 새 분야를 택한 것도 그런 이유였다. 그의 논문주제는 ‘박막을 이용한 고효율 물질합성’. 나노 물질개발에 물리학적 방법론을 접목한 것이다. 처음엔 교수·동료까지 회의적이었지만 2년쯤 지나자 차츰 성과가 나왔다. 아무도 시도하지 않았던 분야라 결과가 나오는 족족 최초의 업적이 됐다. 네이처지 2회를 포함, 크고 작은 전문학술지에 8차례나 논문을 게재했다. 졸업 뒤에는 지도교수와 함께 신소재 개발 벤처를 차려 4년여만에 매출 400만달러의 기업으로 성장시켰다.

그런 그가 갑자기 한국행을 결정한 이유는 모든 나노산업의 초석이 되는 '나노계측'을 연구하기 위해서다. 그가 들어간 원자현미경 개발업체 ㈜PSIA는 나노계측에서 세계적인 수준을 이뤄낸 벤처기업. 훗날 바이오 산업과 접목한 또 다른 새로운 분야를 만들어 내겠다는 그의 목표를 이루기 위해 이 업체에서의 연구는 필수과정이다. PSIA 역시 이런 도전을 환영, 다른 연구원들보다 훨씬 높은 연봉과 스톡옵션으로 유씨를 수석연구원으로 받아들였다.

그는 자신이 남과 다른시각을 가질 수 있는 게 바로 기초과학을 전공한 덕분이라고 했다. 
그렇기에 최근 이공계 위기 현상을 보면서 과학도들에게 할말이 많다. 분명 자신이 극복할 수 있는데도 사회 탓만 하며 안정된 의사나 교수, 대기업 연구원만 부러워 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다. "사람들은 저에게 '왜 그런 모험을 하느냐'고 묻습니다. 그러나 확실한 목표를 가지고 논리적으로 내린 결론이기에 벤처를 간 것이 결코 벤처(venture·모험)라 생각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젊은 날 안정된 곳만을 찾는 것이 인생 전체에서는 오히려 더 모험일테니까요."


중앙일보 1월13일 김필규기자 phil9@joongang.co.kr